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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소중한 삶의 주인공“학교 폭력예방을 위한 갈등해소 대화법!”
서진희  |  kadrcen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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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09  16: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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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학교폭력은 말 그대로 학교 안팎에서 학생 사이에 일어난 폭행ㆍ협박ㆍ따돌림 때문에 신체ㆍ정신ㆍ재산에 피해를 보는 각종 행위로, 학교폭력은 단일 유형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여러 유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다.

신체적 측면으로 차기, 때리기, 침뱉기, 흉기로 위협하기, 피해자 물건 빼앗기, 돈이나 금품 갈취하며 폭력 행사하기와 언어적 측면으로 별명 부르기, 모욕, 차별적 말하기, 마음을 상하게 하고 모욕감을 주는 말하기, 신체적 폭력을 가하겠다는 위협적인 말하기, 그리고 정서적 측면으로 바보 만들기, 공개적으로 망신주기, 집단에서 소외시키기, 지속적으로 귀찮게 하는 행위, 헛소문 또는 사악한 소문 퍼뜨리기 등을 들 수 있다.

올 EBS의 청소년 특별기획 ‘학교폭력’에서는 피해자와 그 가족의 오랜 고통을 집중 조명하고 있었다. 오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겨워 하는 왕따 피해자들을 통해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모든 부모,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의 교사들, 청소년들을 지켜야 하는 우리 사회, 그리고 함께 한 학교에서 공부하는 모든 학생들의 시선에서 다시 좀 더 깊게 학교폭력에 대해 찬찬히 들여다봐야 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요즘 청소년, 성인 구분 없는 사회 전반적인 모습이지만 대부분 소지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통해 얼굴 보이지 않는 저 공간 너머의 자신의 생각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타인에게로 인터넷 게시판의 글과 댓글들은 가슴속에 무수한 사회적 분노를 담고 무작위로 욕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인터넷의 욕설로 자신들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른 가치관들에 쏟아지는 욕설들을 보노라면 극도로 분열된 이분법적인 사고를 대하게 되어 참으로 참담할 지경이다. EBS의 ‘욕해도 될까요?’란 화면을 통하지 않고서도 지나는 청소년들의 대화를 들어봐도 욕설은 그냥 일상적인 대화가 되어 전혀 스스럼없이 사용을 하고 있다.

욕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는 현 사회문화도 문제가 심각하지만, 청소년들의 분노표출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본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고 가치 있는 목적을 지닌 사람들은 폭력적인 언행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함과 더불어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함께 함에 대해 알아본다.

2. 학교폭력의 실태

예전 전통사회는 일찍 결혼을 해서 사춘기가 오자마자 곧 성인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사춘기 방황하는 시기도 짧았거니와 현대의 우리 청소년들처럼 너나없이 경쟁적인 사회에서 살아남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위협감을 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수많은 청소년들은 많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아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시기에 남들이 다 알아주는 좋은 대학교 문을 통과하기 위한 경쟁에 일찌감치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이끌림을 당해 긴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 무한경쟁체제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인성이 피폐해진 가운데 분노를 조절할 줄 모르는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학교폭력의 문제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어서 그 현황에 대해서 해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기구들에서 조사 발표되고 있다. 1994년 학교청소년상담원에서 ‘매맞는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심포지움에서는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 교내에서 맞는 학생의 비율이 4.2%라 보고되었고 이 때 초등학생은 9%, 중학생은 5%, 고등학생은 2%의 비율로 초등학생의 비율이 높았다.

1997년 ‘따돌리는 아이들, 따돌림당하는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움에서는 친구를 따돌린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들이 48.1%였고, 3.7%는 거의 매일 친구를 따돌린다고 응답을 했다. 또한 30%의 청소년이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5.2%는 거의 매일 따돌림을 당한다고 응답했다.

2012년 2월에 교과부에서 실시한 학교폭력전수조사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3에 이르기까지 전국 558만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25% 정도의 학생들이 응답을 했다. 전체 응답자 139만 명 중 12.3%인 17만 명이 최근 1년간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점차 가정의 해체가 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고, 현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 사회에서 저소득층의 맞벌이 등으로 가정의 밥상머리 교육의 부재도 그 원인이 있다. 정말 필요한 것들이 등한시 된 채 오로지 다른 것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잘하라는 부모들의 인식도 문제요인이다. “잘못된 일을 보고 잘못된 일이지만 그런 일을 보면 너는 뒤로 빠져라.”하는 내 자식 다칠까봐 불의에 침묵하라는 부모님의 가르침도 점차 극심해지는 각종 폭력문제의 양산에 한 편 다리를 걸친 것은 아닐까.


학교폭력을 최초로 경험하는 시기는 초등학교 1~3학년 26%, 초등학교 4~6학년 46%로 초등학교 때가 72%를 차지한다는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2011 학교폭력 실태조사 자료’를 보듯 점차 폭력행위도 저학년으로 낮아지고 있다. 그런데 초등 저학년의 경우 극히 사소한 장난에서 시작되어 반복되거나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이 아이들에게는 ‘폭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여 “무엇이 폭력이지? 난 장난친 건데... ”하기 일쑤다.

그래서 이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폭력과 장난에 대한 확실한 구분과 상황별 대하는 태도 등을 역할극 등을 통해 미리 예방교육이 필수가 되어야한다.


콜버그의 인지적 접근의 도덕성 발달이론은 인지적 요인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학교폭력갈등 문제를 도덕성 발달이론에 대입시켜보자.


그는 학교에서 도덕성의 문제를 어린이에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도덕성 판단 단계에 맞게 소집단을 형성하여 도덕성 문제 및 도덕적 가치 갈등에 대하여 토론을 하게 함으로써 도덕성발달이 하위단계에서 다음 상위단계로 이행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어린이는 자신의 현재 도덕성 단계보다 한 단계 상위단계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며, 보다 상위단계의 판단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콜버그는 도덕성 발달이론은 부모나 교사들이 어린이의 연령에 따라 어떻게 도덕 교육을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유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예컨대, 아주 어린 아동들이 나쁜 행동을 했을 때는 즉각적인 처벌로 어린이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다 성숙한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는 사회적 제재보다 보편적인 가치기준 혹은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 더 적절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 제1수준, 전인습적 : 전도덕성

도덕적 선악의 개념은 있으나, 준거는 권위자의 힘이나 개인적 욕구에 관련시켜 해석한다.


(1) 1단계(주관화 - 복종과 처벌지향)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기 때문에 그러한 나쁜 짓을 피하고, 권위에 복종하는 시기이다. 3세-7세에서 나타나는 이 단계는 벌과 순종을 향하여 있다. 놀이 친구를 고자질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 나이 또래의 어린이는 "차라리 말하겠어. 그렇지 않으면 매맞을 거야."라고 대부분 말한다.

그래서 이 연령의 아이들을 지도하는 유치원 선생님에게는 수시로 아이들이 이르러 온다.

“선생님, 얘가요 하지 말하고 했는데 했어요.”

“선생님, 얘가요, 욕했어요..”

이럴 때 선생님이나 어른은 아이들마다 죄다 쫓아와 말하는 것이 귀찮다고 “고자질하는 것은 나쁜 짓이야!!라는 말을 하여 아이들의 도덕성을 훼손시켜선 안된다.

“네가 먼저 ‘그건 나쁜 일이야!’라고 말을 했는데도 전혀 말을 듣지 않았을 때 선생님에게 말을 해주렴...”라고 해서 아이들이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생활화시켜야 한다.

다음의 고자질이란 글을 보자.


초등학교의 1학년 학생이 자기 짝이 핸드폰을 학교에 갖고 왔다고 담임선생님께 고자질하였다. 선생님은 여러 번 핸드폰을 학교에 갖고 오지 말라고 주의를 주어왔었다. 그랬는데도 선생님은 핸드폰을 갖고 온 학생에게 아무런 꾸중이나 지도를 하지 않은 채 그냥 지나쳐버렸다. 고자질한 꼬마한테도 착하다드니 어쩌느니의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고자질하는 장면을 다른 아이들이 다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 꼬마는 그날로 방과 후 집에 올 때 왕따가 되었다.

그러고서 며칠이 지난 뒤, 이 꼬마는 나도 핸드폰을 학교에 가져가면 왕따를 면하겠다는 생각으로 집에 와서 엄마를 졸랐다. 핸드폰을 사달고 때를 썼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 짝이 핸드폰을 학교에 갖고 와도 선생님이 혼내주지 않아!’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그 꼬마의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꼬마한테 ‘어째 너희 선생님이 그럴 수 있느냐?’는 투로 아이 앞에서 선생님 흉을 보시면 안 됩니다. 대신에

‘네가 선생님한테 네 짝이 핸드폰을 갖고 왔다고 일러바치기 전에 그 애한테 핸드폰을 학교에 갖고 오면 안 된다고 말해주었느냐?’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였는데도 핸드폰을 학교에 갖고 오면 그때 선생님께 일러야 한다고 말입니다.’


고자질의 순서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이런 정신이 어릴 때부터 심어져야 고자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사라진다.


[울산제일일보, 박문태, 2010.02.23]


(2) 2단계

이 단계의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모든 사람들이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명 정대함도 요구한다. 예로 어른들이 자신들은 TV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들어가서 빨리 자라~”하는 어른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또한 이 시기가 되면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위와 같은 고자질하는 상황이 오면 “ 고자질 하지 않겠어요!”란 답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2) 제2수준, 인습 수준 : 타율 도덕성

자신이 속한 집단의 기대나 기준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기며 사회질서에 동조하고자 하고 힘 있는 사람과의 동일시를 하려 한다. 다른 사람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사회 지향적 가치기준을 갖는다.

그래서 이 시기의 아이들은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힘 있는 사람에게 동조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어져서 초등학교에서도 왕따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3) 3단계 (객체화 - 착한 아이 지향)

12세-17세의 청소년에게 나타나는 이 시기는 상호 인격적 일치가 나타난다. 청소년은 다른 사람의 관점과 의도를 이해할 수 있고, 고려할 수 있다. 정의는 항상 다른 사람을 부정하고 해치지 않는 옳은 것에 대한 인습적 형상(image)을 포함한다. 아무리 반항적인 청소년일지라도 항상 그들의 도덕적 개념을 유지해 주는 동년배 집단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의 도덕적 판단의 특징적인 결과는 보다 덜 반항적인 청소년들과도 마찬가지이다.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도 혹 주변의 아이들이 그걸 보고 자신에 대해 나쁘게 생각할까봐 그러한 짓을 하지 않을 선택도 한다.


(4) 4단계 (사회화 - 사회질서와 권위 지향)

이 시기에는 18세에서 25세의 시기로 법과 질서를 준수하여 친구가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법을 어기는지 어기지 않는지 판단하여 정의를 지킬 것인가, 모른 척 할 것인가를 선택한다.


3) 제3수준, 후인습수준 : 자율도덕성

자신의 가지관과 도덕적 원리원칙이 자신이 속한 집단과 별개임을 깨닫게 되면서 개인의 양심에 근거하여 행위를 하게 된다.

 

3. 갈등 상황 속 마음 다스리기


우리 인간이 태어나 첫 번째 구별하는 것은 행복한 얼굴과 슬픈 얼굴이라고 한다. 이는 갓 태어난 아기들이 있는 신생아실에 가보면 한 아기가 울면 곧이어 모든 아기들이 다 따라 우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한 아기가 울기만 하면 전체가 다 따라 울던 아기들은 자신의 울음을 녹음시켜서 들려주면 제 우는 목소리에는 울지 않는 것을 보고 교육학자들은 타인의 음성에 공감하며 행동하는 것이 인간은 날 때부터 프로그램화 되어있다고 본다.

어떤 사람은 참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이 많은 존재 같지만, 우리 인간은 타고나면서부터 이기심보다 이타심이 한 뼘은 더 큰 존재들이다. 이타심은 타인을 향한 사랑이며 그 사랑은 인정욕구의 아름다운 실천이다. “당신은 참 소중한 사람이에요!”라고 인정하며 아름답고 감동적인 말과 행동을 통한 표현으로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날 때부터 타인에 대해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이타심도 한 뼘은 더 큰 인간들이 점차 폭력적이고 문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둘러싼 교육적 환경요인으로 기인함이다. 타인을 돕고 싶은 마음이 다 타고나면서부터 있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감옥에 가고, 어떤 사람들은 사회에 필요한 인물로 성장하게 되는가를 보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으면서, 어떤 삶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것에 그 연유가 있다. 어떤 사람은 풍요로움 속에서 펑펑 자신과 가족들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만 아는 것이 아닌 타인을 생각하도록 교육받은 부모 밑에서, 또 그러한 교육자 밑에서 자라나 그렇게 함께 돕고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지게 된다.

태어나기엔 모든 존재들이 동일한 소중한 존재로 태어났는데, 태어난 환경, 자라나는 환경에 따라 누구는 좀 더 풍요 속에서 , 누구는 아주 힘겹게 먹을 것도 없이 살아가면서 사람들의 풍성도 사람들의 배움의 질도 달라지고, 그러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환경의 차이로 인해 아이들은 점차 뭔가 불평등한 세상을 보기도 한다. 때론 출발선이 다른 세상에서 경쟁을 하라고 하니 우리 아이들이 참으로 힘겹고, 그 힘겨움은 소외감으로 외롭다. 때론 사회적 불평등 속 소외가 아니어도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끔찍한 사회적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자신을 낳아주는 부모는 선택할 수 없지만, 이 땅에 난 자신의 삶의 방향은 선택할 수 있는 소중한 생명들이다. 차별받지 않는 미래,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가치 있는 목적을 지닌 삶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그 자신 삶의 주인공들이다. 2007년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사건으로 32명이나 희생자를 내고 자신도 자살을 했던 조승희는 사건 발생 후에 밝혀진 사실로는 방송국에 노래참여 테이프를 보냈다고 한다. 친구가 없었다던 그도 세상과 소통을 하고 싶다는 의사표시를 하였던 셈이나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싶다.

우스개소리로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는 이유로 우리나라 중학교 2학년들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나이의 청소년들이 겪으며 표출하는 모습을 전 생애를 걸쳐 ‘질풍노도기’라 불리는 시기를 겪는다. 물론 사람들이 저마다 달라서 모든 학생들이 다 질풍노도기를 겪지 않는다. 조용히 청소년시기에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학생들도 물론 있다.

오늘날 현대 뇌과학에서는 청소년들이 질풍노도기를 겪는 이유에 대해 과학적 분석을 했는데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전두엽은 여자는 24세경, 남자는 30세경으로 완성시기를 잡고 있으며 대학에서 공부하고 직장 취직할 무렵이 되는 청년시절에는 대학내 폭력 문제가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코티솔’이라는 뇌 호르몬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급격히 생성되는데 면역력 저하, 노화, 뇌세포사망, 기억학습능력 부진, 골밀도 감소, 근육 감소, 허리와 복부에 지방축적 등의 부작용으로 더욱 상황을 악화시키지만 청소년 시기에도 감정을 잘 다스리는데 능숙해지면, 미주신경의 발달로 상처 회복능력이 향상되고 건강한 심장도 갖게 되며 스트레스 상황에서 잘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청소년은 스스로 뇌를 창조할 수 있다. 변연계의 작용 (감수성. 식욕, 성욕등)이 예민하고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성인에 비해 40%가 적게 분비되어 감정기복이 심하다. 사춘기에는 최소 9시간 15분의 수면이 필요한데 오늘날의 청소년들의 무한경쟁 속 학교와 학원을 뱅뱅 돌며 수면시간이 부족하다. 이는 스트레스의 핵심으로 감정적으로 불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감정은 조절할 수 있다.


1)마음 속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 잠시 5초 들숨, 5초 날숨으로 호흡을 길게 쉬어보자.

2단계로 계속 깊은 호흡을 하면서 화가 나는 스트레스 유발 상황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일을 상상하자. 당장 기분 좋아지는 일과 함께 미래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며 자아실현의 멋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자.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누군가에게 필요한 나...그러한 상상은 당장 폭력적인 행동이 표출되는 일 등은 막을 수 있다.


4. 폭력 이제 그만! 가치 있는 목적이 이끄는 삶

마음속 분노도 가라앉힐 수 있는 가치 있는 목적을 지닌 학생들은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위해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 청소년기의 몸을 막 굴린 대가로 자신이 이 땅에 난 소중한 소명을 다하는 삶, 성인이 된 미래에 정말 해야 할 목적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삶의 목적을 지닌 청소년들은 매일 스스로를 믿고 성장시킨다. 오랜 역사를 통해 보더라도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변화로 이끌어낸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그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자신의 내면의 힘을 가치 있게 발휘하며 좀 더 나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이끌어낸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공통적 습관이 있다. 무한한 호기심을 가지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 대해 모험심을 가지고 도전하며, 도전 속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 속에 일어나지 못하는 좌절을 두려워하였다. 또한 늘 책을 가까이 하고 그 책 속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같은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같은 세기에 비슷한 환경에 나서도 어떤 삶들은 세상을 이끌 멋진 삶들을 살아내는데 어느 삶들은 늘 고통스럽다고 아우성이다.

그 고통의 근원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갈등을 겪고 왜 괴로워할까?

제때 밥을 못 먹을 때, 친구들과 달리 자신만 입고 싶은 상표의 옷을 돈이 없다고 입지 못할 때, 친구들이 자신을 왕따 시킬 때, 누군가의 조롱, 비난 무시 등을 당할 때, 길 가다가 넘어질 때도, 학교에서 선생님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에도, 성적표를 받을 때 목표한 점수가 아닌 낮은 점수가 나왔을 때도,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가, 또는 남자아이가 자신을 모른 체 할 때에도 사람은 괴롭다.

그런데 이러한 가운데 괴로움의 가중치가 큰 것은 밥을 제 때 못 먹거나 좋은 옷을 못 입어서가 아닌 인정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가장 크다. 스스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빈곤감이 클 때 더욱 그 크기가 커진다.


모든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 그 행복한 삶을 위해 공부도 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학교를 다녀야 하지만 오늘날 학교 안의 청소년들인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교 밖의 청소년이 자신의 삶의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다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친구들이 다니니까 다니는 거죠!” 하는 청소년들이 서울의 유명하다는 대학문을 뚫고 입학을 해서도 그 대학교 상담센터 문을 두드리며 그 중 65%는 자신의 삶의 길을 모르겠다고 상담을 하고 있는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이미 대학의 공부할 과를 선택하며 들어왔으면서도 목적 없이 대학4년 동안 표류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행복하다는 건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존재에게서 인정받을 때, 자신을 좋아해 주었으면 하는 그 누군가 좋아해줄 때, 또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삶에 만족해서 생성되는 감정이기도 하다.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에 의하면 삶의 성찰이 되어 타인의 인정이 전혀 필요하지 않는 경지에 다다른 자아실현을 한 사람도, 그 최상의 욕구인 자아실현을 위한 욕구를 가지고 살아가는 셈이다. 자아실현의 욕구는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존재적인 욕구이다. 우리 인간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본능적 욕구로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인정욕구의 대 투쟁 속에서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수많은 갈등의 원인들도, 학교 내 친구들과의 갈등, 폭력, 가정 내 갈등 등도 가만히 살펴보면 자기 자신에 대하여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할 때에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도 엄마는 엄마대로 나름 열심히 하는데 남편이, 아이들이 그걸 인정해주지 않고 대하는 일에 화를 내고 있고, 남편은 남편대로 열심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는 자신에 대해 돈만 벌어오는 기계로 여길 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정욕구의 부족에 화가 나고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 학교의 선생님들도 나름 열심히 교사로서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하는데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함부로 하는 행동 등이 있을 때의 마음속 무참한 갈등도 기실은 선생님으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음에 대한 분노가 포함 되어 교사로서의 존재에 대한 자존감 상실감을 유발한다. 또한 학생들도 선생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불쑥불쑥 수업방향과 다른 방향의 행동을 하는 것도 인정욕구가 덜 채워진 학생들의 행동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난 자신의 인생의 영화를 찍기 위한 감독으로서, 그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이고, 그 자신이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하여 자신의 영화를 찍기 위해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는 내 인생 주인공으로 살아야하니까 당신은 저기서 지나가기만 해줄래? 거기 서 있기만 해줘. 거기에서 엑스트라로 좀 활동해줘!” 할 수 없다.

이 세상에 난 모든 사람들은 다들 자신의 삶의 영화를 찍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서로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다 서로 다른 저마다의 존재들에 대해서 다름에 대해 인정해 주고 배려해주는 인정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다음은 그러한 사회를 위해 만든 자아 선언문이다.

아침 거울을 보며 자기 자신에 대해 자아선언을 자주 한다면 종국에는 타인의 인정이 꼭 필요치 않아도 행복한 자아실현의 삶을 살지 않을까.


자아 선언문


나는 내 삶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며, 작가이며 주인공이다.

나는 한 사람의 소중한 인격체로서 타인으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도록 행동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존중하는 삶을 통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으로서 이 땅의 미래를 책임지고 열어갈 것이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활동하는 내 삶의 주체로서 자율과 참여의 기회를 통해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며 정의로운 공동체의 성원으로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이 땅의 꼭 필요한 소중한 인재로 성장하기 위한 모든 배움의 진리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5. 학교갈등, 말로 풀어내는 대화법


예전 미국의 카네기 멜론 공대 졸업생 중 직장생활에서 실패한 1000명을 대상으로 실패요인에 대한 설문을 하였더니 85%가 인간관계에서 실패하였고, 15%가 실력과 기술이 부족했다고 응답하였다.

잘 안 되는 것마다 다른 사람 ‘ 때문에’ 그 이유를 돌리는 것보다 다른 사람 ‘덕분에’ 조금이라도 좋아지는 걸 찾아내는 눈을 가질 때 작은 사회인 학교에서부터 장차 사회에 나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세상에 나서 그 타고 난 그 본 소명을 하며 살아가는 멋진 관계를 만들 수 있다. 교실에서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에게 소중한 우리 서로를 키우는 대화속에서 우리 자신의 삶이 이 땅에서 참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하는 다음과 같은 늘 실천해보자.


그렇다면 교실 속에서 잘못된 친구의 행동에는 어떻게 침묵하지 않고 그러한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친구들이 잘못된 일에 먼저 용기 있게 말하는 친구가 있을 때 나머지 바라보지만 말고, 함께 한 목소리로 동시에 같이 “그래!! 그건 아닌 것 같다. 지금 그 친구는 약한 상태야! 약한 사람을 재미있다고 괴롭히는 건 잘못된 일이야!.”고 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힘이 강한 사람이 힘이 없는 사람에게 재밌어서, 그냥 이유 없이 던진 돌멩이 하나에도 약한 사람은 죽을 수도 있다. 잘못된 일에는 함께 잘못되었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함께 목소리를 내어줄 친구가 옆에 있기 마련이다.

옆에 친구가 학교폭력으로 힘들어할 때 우리는 대부분 다음과 같은 말을 하여 폭력 피해학생에게 더욱 자존감에 상처를 준다.


“야, 네가 가만있으니까 맞는 거야!”

“야, 넌 그런 애들을 가만 두냐? 죽기 살기로 맞짱 떠!! 병신같이 맞고 사냐?”

“솔직히 쟤 좀 왕따 당하게 행동하지 않냐?”

“네가 맞을 만하니 맞은 거 아냐?”

“너에게도 문제가 있었던 거 아니니?”


세상에 어떠한 잘못을 했어도 사람을 때리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을 잘못된 일이다. 어느 시인은 꽃으로라도 사람은 때리지 말라고 했듯이.

폭력으로 힘들어 하는 학생에게 우선 다음과 같이 말해보자.


“ 이 문제는 너 혼자 끙끙댈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어른에게 도움을 청하자!”

“ 엄마랑 아빠에게도 말씀드리고, 학교 선생님께도 말씀드리자. 우리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

“ 이 문제는 절대 그냥 덮고 갈 문제가 아니야! 너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같은 피해를 입을 수 있어! ”

“ 잘못한 얘들은 벌을 받을 거야! 그래야 정의로운 거지!!”

“ 그 가해학생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받을 수 있도록 어른에게 도움 청하자!”


사실 폭력실태를 조사해보면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된 행동이 어느 순간부터 습관처럼 굳어져 가해학생 자신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나 부모에게 사실을 말할 때 부인하거나 축소하여 이야기한다. 또 가해학생은 당한 피해학생이 자신에게 별다르게 저항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스스로 죄책감도 적다. 이렇게 반응하는 가해학생에게 진정으로 잘못을 느끼고 사과할 수 있도록 이끌기 위해서 가해학생의 심리적 변화단계를 알고 자신의 행동에 반성할 기회를 제공하는 어른들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살아야 행복하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서로를 키우는 말들을 해보자.


“너는 나무 한 그루만이 아닌 숲 전체를 볼 수 있는 사람이야”

“너는 언제나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긍정적인 사람이야.”

“너는 ‘고마워, 미안해,’ 라는 말이 지닌 큰 힘에 대해 잘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야.”

“너는 네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마음을 쏟는 열정적인 사람이야.”

“너는 아는 것과 행함이 일치하는 멋진 사람이야.”

“너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여럿이 힘을 합치면 잘 해 낼 수 있는 걸 알고 있는 참으로 멋진 사람이야.”

“너는 이 세상에서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이들은 모른 척 하지 않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

“너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야.”

“너는 너 자신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가 그 실현을 위해 돕는다는 것을 아는 지혜의 눈을 가진 사람이야.”

수고하셨습니다.


한국갈등해결센터 전문위원 서진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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