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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의 사회-14]우리나라 국가시스템은 안녕한가?
이수호 상임고문  |  adrnews@ad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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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2  12: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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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호 (사)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고문
탑승을 마치고 계류장을 떠나 활주로로 무거운 동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5~6분이 지났을까, 날개 부근인지 어딘지에서 끽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비행기가 멈췄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끽끽거리며 뭔가를 시도하는 것 같았다. 그러기를 10여분. 그때서야 기내방송이 나왔다. 기계에 가벼운 문제가 생겼는데 고쳐서 가겠다고 조금만 기다리란다. 그러면서 끽끽대기를 또 10여분, 비행기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 9시30분 인천을 출발해서 광저우로 가는 중국 ㅇㅇ항공, 승객의 대부분은 중국인인데 의외로 조용했고 표정은 느긋했다. 중국인 특유의 여유로움인지 중국 항공기의 잦은 연발 등으로 인한 습성화인지, 답답해서 미치겠다는 표정의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대조적이었다. 기내 분위기를 염려했는지 음료수와 견과류(땅콩)가 제공되었다. 결국은 계류장으로 돌아간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기내는 잠시 술렁거렸으나 이내 가라앉고, 나는 갑자기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얼른 고쳐서 떠난다던 비행기는 끽끽대는 외마디소리만 지를 뿐 고쳐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승객들은 이러다가 어느 순간 “많이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제 우리 비행기는 이륙하겠습니다”라는 기장의 방송과 함께 출발하기를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에 갇힌 우리가 방송을 기다리는 것 말고 따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시스템 고장으로 비행기 출발 지연
드디어 스튜어디스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시스템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시간이 좀 더 걸리겠다는 말과 함께 먼저 점심 제공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불안해하던 승객들은 밥을 준다는 말에 오히려 고마워하기도 하는 눈치였다. 아침부터 이 비행기라는 거대한 쇠통 속에 들어오기 위해 설치느라 촐촐한 참에 비행기가 출발하지도 않았는데 밥을 준다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듯했다.

   
▲ (이미지 출처 pixabay)
생각해 보니 우리는 감방보다 더 견고한 거대한 쇠통 속에 있었고, 그 쇠통은 우리가 짐작도 할 수 없는 더 복잡한 어떤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우리는 고장난 시스템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제공된 음료수와 땅콩도, 그리고 지금 주겠다는 점심도, 이륙과 상관없이 이 거대한 쇠통 속에서의 시간 경과에 따른 매뉴얼의 작동에 불과한 것이었다. 정말 안타깝고 답답한 것은, 이 거대한 시스템 안에 있는 우리는 그냥 몸을 맡기는 것 외에 별로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언제부터인가 온통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학교 시스템, 교육 시스템, 경제 시스템, 국가 시스템 등등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고도의 IT 기술까지 합세하면서, 우리 사회 전체는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융합체가 되었다. 그리고 앞다투어 그것을 강화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인류의 미래라고 믿고, 거기서 뒤처지면 후진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것은 회복할 수 없는 불행인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스템을 잘 만들고 운용할 지도자를 원한다. 시스템의 쇠통 속에 갇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낮고 부드러우면서도 권위가 넘치는 기장의 목소리를 기다리게 되고,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그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기내식까지 먹은 우리는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승객 대부분은 언젠가는 고쳐지겠지 하며 애써 느긋했고, 일부는 불안을 참느라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몇몇은 용감하게 안내원을 붙들고 짜증도 내고 호소도 해 보지만 별 효과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 비행기 문을 열게 해서 억지로 나간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바깥에는 이 비행기보다 더 크고 더 복잡한 시스템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 시스템에 우리가 새롭게 입력될 공간은 없었다. 우리가 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 표를 사는 데도 몇 달 전, 혹은 최소 며칠 전까지는 예약을 해야 했고, 지금 당장은 이 공항의 어느 비행기도 탈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카트만두까지 가는 우리 일행은 광저우 공항에서 갈아타도록 예약이 돼 있는데, 더 늦어져서 환승을 못하면 2주간의 네팔에서의 우리 계획은 엉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순차적으로 이미 약속돼 있는 모든 일정을 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권위 있는 기장의 기내방송이 울려퍼졌다. 우리는 긴장하며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속으론 제발 좋은 소식이기만 기대했다.

넘쳐나는 부실국가 시스템의 피해자
“승객 여러분! 오래 기다리게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우리 비행기는 이륙 직전 시스템상의 조그만 문제가 발생하여 즉각 시정조치를 하고 출발하려 했으나, 연속되는 시스템의 연관관계로 인해 전반적 재점검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확인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므로 부득이 승객들이 내리신 후 확인 점검하도록 결정하였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내려서 공항에서 대기해 주시면, 신속하게 시스템을 바로잡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승객 여러분께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기장은 시스템이란 말을 몇 번이나 써 가며, 우리가 알 듯 말 듯한 내용을 유창해 보이는 영어로 말하는 바람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여성 안내원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통역방송을 하는데도 무슨 내용인지 모호하기만 했다. 다만 이 큰 비행기가 어떤 시스템에 의해서 하늘을 난다는 사실과, 이 시스템에 조그마한 문제만 생겨도 꼼짝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암튼 우리는 무거운 보따리들을 들고 쫓겨나듯 비행기를 내려야 했다.

거대한 공항 로비는 황량했다. 최신식 건물에 철저하게 기능적으로 배치된 공간들, 화려한 상점들, 어디론가 가리키고 있는 수많은 표지판들, 그 사이를 따라 흐르는 좀비 같은 군상들…. 기장이 그렇게 강조하던 그 시스템이 거기에 그렇게 웅크리고 있었다. 공항 콘크리트 바닥에 엉거주춤 앉아서 비행기가 고쳐지기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스템 속에 있는가? 그 시스템은 얼마나 안전하고 튼튼한가? 그 시스템의 운용자는 믿을 만한가?

우리나라 국가시스템은 어떤가? 이 엄청난 빈부 격차, 절반이 넘은 비정규직, 감면해 준 부자들의 세금 때문에 연말정산에서 서민들이 맞아야 하는 세금 폭탄, 생색내기 자원외교의 이름으로 낭비된 수십조원의 혈세, 엉터리 4대강 사업으로 망가진 국토와 강에 흘려보내고 모래밭에 묻어버린 엄청난 돈, 빈곤에 쫓겨 연탄불을 피우고 자살한 세 모녀, ‘가만히 있어라’ 해놓고 수장해 버린 세월호 304명의 꽃다운 생명, 철탑에 굴뚝에 선전탑에 오르고 또 오르는 쫓겨난 노동자들…. 거리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부실국가 시스템의 피해자들이 넘치고 있다. 우리는 고장난 비행기에서 쫓겨나 공항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나라 잃은 유민들처럼 울고 있었다.

<이수호 갈등해결센터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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