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연재
[비상식의 사회]이주노동자·비정규직의 ‘힘겨운 여름’
이수호 상임고문  |  adrnews@adr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8.18  14:49:0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이수호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고문
2015년 여름, 정말 너무 덥다. 저녁인데도 후텁지근한 열기가 좀처럼 식어들지 않는다. 뉴스는 더 지독한 열기를 연일 뿜어내고 있다.

국정원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찰용 해킹시스템을 몰래 들여와 사용을 하다가 들통이 나자, 해당 직원의 자살을 빌미로 뭉개고 지나가려 하고 있다. 싸울 의지도 없을 뿐 아니라 무능하기까지 한 야당은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는 사이에, 국민들 가슴만 모진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쩍쩍 금이 가고 있다. 시어미 화나면 애먼 며느리 잡는다고, 청년실업 해결하라 했더니 큰 놈 손에 쥔 코 묻은 과자를 빼앗아 작은 놈 주겠다며, 노동개혁이네 뭐네 하며 노동자들만 족치는 사이에, 수십 수백 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도, 그 돈 버느라 뼈 빠지게 일한 노동자들에게 좀 나누어주기는커녕 새로운 투자도 않고 법인세만 감면 받으며, 쌓이는 돈 서로 먹으려고, 형제간에 부자간에 저질스럽게 싸우는 재벌집안 꼴은 정말 두 눈 뜨고는 보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이런 재벌 몇몇만 바로잡아도 그 돈으로 청년실업도 해결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너끈히 해결할 텐데, 재벌개혁 얘기만 하면 종북세력으로 몰아 마녀사냥에 급급하니, 이 세상이 어찌 덥지 않겠는가? 정말 죽을 지경이다. 이러니 이 더위를 피해 외국이든 어디든 여행을 떠나는 걸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모처럼의 휴가를 피서여행은커녕 오히려 더 심한 더위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 괜찮은 피서지로 갈 돈도 없지만, 자기 동료가 자기들 권리를 위해 싸우는 농성장 방문으로 피서휴가를 대신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그들이다.

이주노동자 노조 신고필증 왜 안 내주나
서울 을지로 2가에 있는 서울 지방고용노동청 현관 들머리에는 벌써 10일 이상을 노숙농성을 하며 애타게 노동조합 신고필증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에 와 있는 70만 명 이상의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를 이 뜨거운 여름에 거의 목숨을 걸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저임금에 가장 힘든 일을 하면서도 어떠한 권리도 보장 받지 못했다. 노동기본권의 첫 번째인 단결권에 해당하는 노동조합 설립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데도 무려 10년이나 걸렸다. 지난 6월 24일 대법원 계류 8년째, 드디어 미등록 체류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는 판결을 받으며, 강제추방 등의 위협 속에서도 끈질기게 싸워 마침내 당연한 권리를 받아 쥔 이주노동자들과 그들과 연대해 함께 싸운 여러 단체 관계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날은 마치 한국 이주노동자의 해방의 날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진도는 거기까지였다.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음에도 서울 지방고용노동청은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의 신고필증을 이런저런 핑계로 내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삼권분립의 법치국가로 자처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정부가 만든 시행령으로 국회가 만든 법률을 무시하는가 하면, 헌법정신까지 훼손하기가 다반사요, 정부 말단부처의 행정방침으로 대법원의 판결마저 우습게 만들고 있다. 결국 이주노동자들은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또 한 10년의 싸움을 각오할 수밖에 없게 됐다. 우리나라 경제가 이만큼이라도 버티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을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가장 적은 임금으로 맡아서 해주는 이주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인데, 우리 사회는 아무런 가책도 없이 그들의 희생 위에 화려한 빌딩을 짓고 잘난 척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농성장은 외롭지만은 않았다.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합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면담조차 거부하는 고용노동청장은 출퇴근 시간 농성장 앞을 고개를 못 들고 도망가듯 지나가지만, 모처럼의 여름휴가를 여기 와서 함께 농성에 참가하며 보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나 같이 함께 싸우자고 달려온 민주노총 조합원을 비롯한 연대단체 활동가들의 표정은, 힘차고 밝기만 했다.

   
▲ 부산생탁 노동자 송복남씨와 한남교통 택시 노동자 심정보씨가 올라가 있는 부산시청 앞 광고탑.(사진제공 노동과세계)
그런데 이 삼복더위에 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쫓겨서 이글거리는 태양에 더 가까이 가 있는 노동자들도 있다. 광고판이나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천문학 숫자의 손해배상에 가압류까지 당한 비정규노동자들이 그들이다.

서울 시청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의 전광판 위에는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정명, 한규엽씨가 올라가 있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정규직으로 발령을 해 달라는 당연한 요구를 사측이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조 원 사내 유보금을 쌓아놓고 있는 정몽구 회장은 정규직 발령은커녕 오히려 무려 6억7000만원의 비정규노동자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뜨거운 여름날 전광판 관리회사는 물과 음식 반입까지도 막고 전기까지 끊는 바람에 국가인권위에 긴급구제 요청을 했는데, 국가인권위는 이마저 거부해 위아래에서 같이 발을 동동 구르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태양에 가까이 간 사람들
또 서울의 정치와 금융 1번지인 여의도 LG화학 광고판 위에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이준서 지부장과 CJ대한통운 택배분회 부분회장 신기맹씨가 올라가 금융자본의 심장에서 자본의 갑질에 처절한 을의 저항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도 30억 원의 손해배상이 청구돼 있다.

부산에도 있다. 부산 시청 앞 광고판 위에는 부산생탁 노동자 송복남씨와 한남교통 택시 노동자 심정보씨가 올라가 있다. 이들에게 청구된 손해배상 청구액도 1억2500만원이다. 특히 부산의 막걸리 대표 브랜드인 생탁은 부산합동양조의 상품 이름이다. 작년 1월 노동조합이 결성되기 전까지 부산합동양조의 노동조건은 말 그대로 노동력의 착취 바로 그것이었다.

주5일 근무 시대에 이 회사는 월 1회 휴무에 일요일 특근비도 없을 뿐 아니라 점심때는 고구마 한 개로 밥을 대신하게 했다. 노동자의 70% 이상이 촉탁계약직으로, 월 130만~200만원의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려왔다.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노동부가 사업장을 점검한 결과 근로기준법을 비롯해 산업안전보건법 등 수없이 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부산합동양조는 형사입건 13건에 수십 차례에 걸쳐 과태료를 부과 받고 시정조치를 명령 받았다, 그런데도 이 회사는 오히려 복수노조를 이용해 기업노조를 만들고 민주노조를 탄압하며 버티고 있다. 노동조합은 극심한 탄압 속에 8명이 남아 민주노조 사수와 노동자의 마지막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고공농성은 멀리 거제도에도 있다. 대우해양조선 하청노동자 강병재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4년 전 15만4000 볼트가 흐르는 45m 송전탑 위에서 세 달을 보내고, 사측의 ‘복직약속’ 하나를 믿고 내려왔는데, 4년이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아 이번에는 다시 80m 높이 크레인에 올랐다. 사측은 정규직으로 복직시키는 약속을 지키는 대신 퇴거단행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걸 받아들여 하루 3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했다. 법원은 급기야 그의 차 위에 ‘집행관의 허가 없이 이 자동차를 사용하지 못하며 위반했을 시에는 형벌을 받게 된다’는 ‘자동차 인도 공시’를 붙였다. 그리고 지난 7월 21일 법원 집행관이 이 승합차를 압수해 경매에 넘겼다. 강병재씨는 80m 크레인 위에서 이 소식을 듣고 발을 동동 구르며, 딸이 혼자 있는 전셋집과 살림살이까지 법원이 강제 집행할까 두려워하고 있다.

<이수호 갈등해결센터 상임고문>

이수호 상임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최근인기기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법인명 : (주)에이디알  |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457, 304호(서초동, 보성빌딩)  |  대표전화 : 02-6925-0702
등록번호 : 서울 아 02821  |  등록일 : 2013. 09. 23  |  발행인 : 이덕근  |  편집인 : 오종호  |  청소년보호·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오종호
Copyright © 2013 갈등해결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rnews@ad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