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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의 사회]헌법 31조 제4항을 준수하라
이수호 상임고문  |  adrnews@ad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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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21  15: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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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호 (사)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고문
정말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교육에 대한 국가와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법치주의 민주국가에서는 그 사회의 건전한 상식의 총합은 법조문으로 정리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문제이건 혼란스러울 땐 ‘법대로 하자’고 말하지 않는가? 헌법이 그 중심이다. 우리 헌법은 제31조에서 국민의 교육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면서 교육의 특성상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기 때문에, 제4항을 적시하였다.

‘제4항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교육’이란 말은 단순화하면 ‘가르쳐 기른다’는 뜻으로 가치 지향적이어서, ‘나쁜 교육’이라는 표현은 형용모순으로 쓸 수 없는 말이다. 또 교육은 근본적으로 개인의 가치가 중심이므로 그 사회의 공적 가치와 조화를 이루며 가장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떤 권력도 이를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잘 보장하고 있는 것이 헌법 제31조 제4항이다.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반드시 보장해야 교육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상식적 합의의 표현인 것이다.

국가나 자본도 당연히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아니 특별히 ‘정치적 중립성’을 따로 규정한 것은 특정 정당이나 정파의 정치적 성향의 영향도 문제지만, 국가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된다는 의미가 더 크다. 왜냐하면 국가는 자본과 결탁하여 교육을 수단으로 특정 정책을 관철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점점 무너지는 교육민주화의 성과들
그래서 과거 봉건주의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까지 전체주의나 독재체제 아래서는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체제유지의 온갖 반교육적 만행이 저질러졌던 것이다. 그래서 교육의 민주화란 교육이 얼마나 국가권력이나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를 의미하며, 전교조·민교협 운동 등이 그것을 이루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이후 그동안 이루어 놓았던 교육민주화의 성과들이 무너져가고 있다. 총장 직선으로 상징되었던 대학의 자율성은 교육부의 노골적 법 위반과 개입으로 총장직선제를 무력화시켜 총장을 대학의 수장이 아니라 교육부의 충견으로 만들었고,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지원금을 교육적·합리적으로 배분하기는커녕 비교육적 평가를 통하여 교육부 지시에 무조건 따르는 대학 중심으로 차등지원하면서 대학을 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금 어느 대학을 보더라도 학문하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고, 거대한 취업 준비 학원이나 예비 청년실업자들의 수용소가 돼 버렸다. 특히 천박한 자본과 결탁된 사립학교는 그 참상이 정말 눈 뜨고 보기 힘든 지경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80%에 이르는 사립대학 중 정상으로 운영되는 대학이 거의 없지만, 그 중에서도 현재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는 상지대학교 같은 사례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 교육, 학부모, 청년 단체 등 460여 개 단체가 참가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가 10월 12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배후 청와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제공 :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보수진영 결집 노린 갈등 유발
박정희 정권 이후 세워진 대부분의 사립이 문제가 심각한 것은 박정희 정권 시절의 교육정책에 문제가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혹자는 박정희 정권 때의 산업화정책에 대해 높이 평가하기도 하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좋은 나라를 만들어가는 정책으로는 실패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교육정책이다. 국가의 교육에 대한 책무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교육시설을 설치하고 교사를 배치하는 등 적절한 교육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상대적으로 교육에 대한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 길을 닦고 다리를 놓고 공장을 짓는 게 더 급했다고 얘기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돈을 어디에 얼마를 써야 하는가의 국가전략상 선택이었다. 충분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박정희 정권은 국민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고 그 몫을 천박한 자본에 떠맡겼다. 80% 이상의 대학과 50%의 고등학교가 사립인 나라가 이 지구상에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그 사학들이 어떤 학교들인가? 겉만 보면 번드레한 건물에 그럴 듯한 건학이념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교육주체의 자주성이란 전혀 없는, 몇몇 설립자를 자처하는 교주 일가붙이에 의해 운영되는 회사에 불과하지 않은가? 교수 채용에서부터 휴게실 자판기 설치까지 부정과 비리로 점철된 행태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국가가 교육에 투자해야 할 몫을 천박한 자본에 맡겼으니 그 결과야 보나마나 뻔한 일이다. 최근 급식비리가 드러나 학부모들이 주먹밥을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는 사태로까지 발전한 충암고 사태에서도 잘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사학의 문제는 우려의 수준을 넘고 있다.

상지대학교 설립자 교주를 자처하며 목불인견의 횡포를 부리고 있는 김문기씨를 보더라도, 그분의 그동안의 학교에 대한 인식이나 교육에 대한 태도, 학교운영의 행태 등을 보면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음에도 엄연히 이사장이라고 앉아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 사학의 한 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형편에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 많은 사립대학이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고, 더욱 화가 나는 것은 현 교육부가 이런 사태를 방조하거나 은근히 편을 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이런 엉터리 사립대학들에 법에 따라 임시이사가 파견돼 자율적 경영을 함으로써 상당수 대학이 제자리를 찾아 정상화돼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서며 다시 상황이 악화되어 제 기능을 상실하는 것을 보면, 교육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권(국가권력)이 교육에 잘못 개입하여 나라의 장래를 망치는 사례는 이번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시도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이것은 명백히 헌법 제31조를 위반하는 일이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저지르는 범법행위다.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가을 낙엽처럼 짓밟히고 있다. 그동안 피 흘리며 쌓아온 교육민주화가 하루아침에 쓰레기가 되고 있다. 교육민주화 없는 사회민주화는 어떻게 가능하며, 사회민주화 없는 정치민주화는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 전체가 어둠의 유신독재 시대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요, 민주시민을 향한 선전포고다.

박근혜 정권이 노동개혁이라는 사술로 노동운동을 괴멸시키고, 노동자를 희생 제물로 해 세대 간 갈등을 유발시키더니, 한 걸음 더 나아가 교과서 국정화라는 반헌법행위를 통해 우리 역사와 미래까지 볼모로 잡고 수구와 개혁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것은 총선을 앞둔 박근혜 정권의 선거전술로 보인다. 정권 유지에 혈안이 된 박근혜 정권이 보수진영을 집결시키기 위한 갈등 유발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는 종북으로 재미를 보더니 이번에는 노동과 교육으로 국민들을 또 속이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거리를 도배하다시피 내걸고 있는 펼침막이 그걸 잘 보여주고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청년 일자리 만들자’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제발 국민 속여 나라 망치는 반헌법적 망동을 그만두어야 한다.

<이수호 갈등해결센터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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