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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의 사회-2]우리의 음식문화는 안녕한가?
이수호 상임고문  |  adrnews@ad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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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13  20: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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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한국갈등해결센터 이수호 상임고문
성숙되고 질 높은 삶이란 미리 잘 계획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삶이다. 우리의 성숙한 삶을 위하여 밥상에서부터 우리의 삶을 바로잡아 갔으면 좋겠다.

함민복의 시 ‘눈물은 왜 짠가?’는 우리에게 잘 달인 설렁탕 국물 같은 진한 감동을 준다. 설렁탕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주고받는, 가난한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오고가는 정이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이염을 앓으며 고깃국도 못 먹는 어머니가, 더운 여름날 아들을 보신시킬 요량으로 일부러 설렁탕 집으로 데리고 가서, 자기 투가리의 설렁탕을 아들 투가리에 부어준다.

아들은 그걸 민망해 하면서도, 끓어오르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감동의 눈물을 억제치 못하고 땀에 섞어 훌쩍거리며, ‘눈물은 왜 짠가?’라고 중얼거린다는 내용이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모자간의 그 애틋한 사랑도 감동적이지만, 음식의 맛을 내는 양념처럼 등장하는 설렁탕 집 아저씨의 태도에서도 큰 감동을 받는다.

일부러 다데기를 많이 넣어 설렁탕을 짜게 만들어 국물을 더 달라는 어머니의 요구에, 그 정황을 잘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기꺼이 국물을 더 갖다 준다. 또한 오히려 눈치를 보며, 요구하지도 않은 깍두기를 기분 상하지 않게 한 접시 더 갖다 주기도 한다.

이러한 설렁탕 집 아저씨의 태도는 가족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이뤄지는 사랑이 확대된, 가난한 처지에서 피어나는 애틋한 사랑에 대한 건강한 상식적 사회의 관심과 이해를 실천으로 보여주어 더욱 흐뭇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의 식당 풍경은 언제부턴가 많이 달라졌다.
나는 오늘도 사무실 동료들과 함께 점심밥을 먹으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음식 종류에 따라 좀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 한식은 반찬의 종류가 너무 많고 양도 많다.

밥먹기가 끝났는데도 반찬은 많이 남고, 어떤 반찬은 손도 안 댄 것도 있었다. 그렇게 남는 것은 그냥 쓰레기통으로 가거나, 슬쩍 다시 주물러서 다른 사람 상 위로 올라간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만 얼른 먹고 다시 달라고 한다. 묘하게도 우리나라의 일반 식당은 반찬은 무한 리필이어서 달라는 대로 또 주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다 보니 음식 쓰레기는 더 많아질 수밖에 없고, 식당의 경영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식당이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으로 발전하면서 식당 경영자나 손님들의 인식과 태도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 음식값이야 시장 논리에 의해 정해지겠지만, 문제는 남는 음식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 같다.

음식쓰레기로 버려지는 많은 반찬
우리나라 음식문화가, 아깝게도 쓰레기로 나가는 것이 많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것을 잘 조절하면, 북한을 포함한 굶주리고 있는 제 3세계 사람들에게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통계는 이미 나와 있다. 그런데 그렇게 버려지는 음식의 값도 밥값에 다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또 반찬의 무한 리필도 그냥 공짜가 아니다. 그것까지 고려해서 음식값을 매기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우리가 버리는 음식의 값까지 내고 있는 것이다. 버리는 음식을 줄이면 음식값을 낮추거나 음식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반찬 수를 줄이거나 특정 반찬만 더 달라고 하는 습관도 버려야 한다.

양입제출(量入制出)이라는 말이 있다. 들어오는 양을 고려하여 나가는 것을 조절한다는 뜻이다. 국가도 그렇지만 가정이나 개인도 이 양입제출의 의미를 살렸으면 좋겠다.

특히 음식 습관에도 이 양입제출의 원리가 적용되었으면 좋겠다. 집이든 음식점이든 일단 차려진 밥상을 미리 잘 보고, 거기에 맞춰 음식을 먹자는 것이다.

맛있거나 좋아하는 반찬만 먼저 먹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은 양입제출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편식을 하게 되어 건강도 문제가 되고 어쩔 수 없이 다른 반찬은 남아서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숙되고 질 높은 삶이란 미리 잘 계획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삶이다. 우리의 성숙한 삶을 위하여 밥상에서부터 우리의 삶을 바로잡아 갔으면 좋겠다. 밥상을 받으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입 속으로 아무렇게나 끌어넣지 말고, 우선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계획해보자.

오늘의 반찬은 무엇이고 뭐가 제일 마음에 드는지, 무엇부터 먼저 먹고 어떤 방식으로 먹을 것인지를 생각해서, 거기에 맞추어 먹도록 하자. 골고루 먹어, 숟가락 놓기 전에 먼저 떨어지는 반찬이 없도록 하자.

처음부터 먹을 만큼만 들어서 남는 음식이 없게 하면, 그게 최고의 경지이리라. 특히 아이들에게는 이것부터 가르치자. 이보다 더 좋은 밥상머리 교육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경제교육의 시작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삶에서 거품과 낭비, 허례와 허식을 제거해버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소박한 본래의 삶 속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유태인의 삶에서 여러 가지를 배운다. 수천년 동안 나라 없이 지내면서 온갖 탄압 속에서도 그 정체성을 잃지 않고, 특히 경제적으로 성공한 생활을 유지해온 저력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많은 연구자들은 그 힘을 그들의 생활 속에서 발견한다.

태어날 때부터 이루어지는 역사를 중심으로 한 철저한 가정교육도 교육이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검소한 생활습관에서 찾기도 한다. 그들은 음식을 가려 먹고 음식 쓰레기는 남기지 않는다.

그들이 신봉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내용 중에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일용할 양식’이다. 이왕 소원을 비는 건데 ‘풍족한 양식’일 수도 있고, ‘맛난 음식’일 수도 있는데, 하필 ‘하루 사는 데 꼭 필요한 만큼의 양식’이란 말인가?

음식 남기지 않도록 밥상머리 교육을
유태인들의 조상이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광야생활을 할 때, 먹을 게 없어서 지도부에서 음식을 통제하며 매일 먹을 만큼의 밀가루(만나)와 고기(메추라기)를 배급했고, 거기에 잘 따랐기에 30년이나 광야생활을 하면서도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욕망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욕심이 되어 그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유태인들은 이 욕망을 조절하는 방법을 그들의 역사를 통해 배우고,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발적 가난’을 통한 ‘행복한 생활’을 깊이 생각해볼 때이다. 우리보다 훨씬 가난한 부탄이나 스리랑카의 행복지수가 훨씬 높고,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것을 성찰하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이다.

지금 밀양에선 송전탑 건설 문제를 놓고 정부와 주민들 사이에 극심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고리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실어나르는 송전선로이기 때문에, 핵발전은 안 된다는 입장에서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그

게 사실이라면 밀양싸움은 765KV의 초고압 전기가 통과해 직접 피해를 당하는 밀양 주민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나서야 할 싸움이다. 직접 밀양으로 달려가 용역이나 경찰과 몸싸움이라도 벌여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자기 사는 자리에서 싸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것은 내 집의 전기 사용량부터 줄여나가는 일이다. 좀 더 어둡게, 좀 더 춥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보다는 좀 더 불편한 생활을 기꺼이 감수하여야 한다.

우리 주변을 한 번 돌아보자. 이렇게 밝고 화려한 조명과 내의를 입지 않고도 뜨끈뜨끈한 실내, 전국이 주차장으로 변한 엄청난 자동차들, 한겨울에 먹는 싱싱한 딸기와 참외 등 과일들…. 이렇게 다 누리고도 어떻게 탈핵을 주장하고, 밀양 송전탑 건설 중단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냉정히 바라보자. 지금 우리의 삶은 충분히 불행하다. 한 끼의 밥에서부터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실천을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 암담할 뿐이다.

<이수호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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