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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갈등과 인문학이 만나면?
김주일 /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인력경영학부 교수  |  adrcen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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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7.17  00: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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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갈등조정은 종합예술이라고 한다.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활용하고 또 현자으이 문제해결을 지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개인의 테크닉이나 스킬에 의존할 가능성도 있고 그때 그때 순발력으로 갈등을 해결할 위험도 큰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갈등조정의 이론적 기반과 뿌리는 무엇일까? 답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다양성의 통합을 정치학으로 정의한 아리스토텔리스가 그 시작이 아닌가 싶다. , 거시적 차원에서 갈등조정의 뿌리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미시적으로 심리학이나 인간에 대한 성찰이 뒷받침되어야 갈등이 해결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거시와 미시의 연계, 구조와 행위의 연계가 갈등조정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의 선택은 온전히 당심의 판단이 아닐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갈등조정을 하며 이해관심사(Interest)를 파악하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로 둔다. 그 사람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사람이 진정 원하는 이해관심사가 그 사람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일까에서부터 문제는 시작한다. 본인은 자유의지라고 생각해도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자유의지를 방해하고 스스로 자유의지로 착각하도록 만든다.

 왜그럴까? 먼저 사회구조적 요인이 있으며 사회과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송전탑 갈등의 이면에는 에너지 정책을 비롯한 구조적 요인이 있으며, 노사갈등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 양극화를 비롯한 노동법제의 문제가 있다. 현장의 당사자 이야기만으로는 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개인의 이야기는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기도 하다. 그 사안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온전한 그의 이해관심사를 파악할 수 없다.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적 프레임워크가 갈등조정의 뿌리일 것이다.

 최근에는 세상사를 사람들 간의 관계로 보지 않고 사물 혹은 추상적 개념 간의 관계로 보는 물신주의 풍조가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다. 진보든 보수든 물신주의의 팽배는 동일하다. 물신주의의 극복은 인문학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사람의 진정한 이해관심사를 파악하는 것이 갈등조정의 첫 단추라면 그 시작은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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